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30 챌린저 (문단 편집) === 문제점 === 거대한 17파운더를 무리하게 장착시키다 보니 사용한 포탑의 크기와 무게가 늘어났고, 포탑이 높았기 때문에 무게중심도 지나치게 높아져서 차체가 불안했다. 17파운더의 무게가 무겁다보니 포탑의 장갑도 얇아졌다. 그리고 "17파운더 포탄이 무거우니 탄약수를 두명 태우자"라는 괴상한 발상 덕에 포탑에만 4명이 탑승했고, 포탑 내부에 17파운더의 포미가 있는건 물론 승무원이 4명이나 타다보니 내부가 비좁고 전투 효율도 떨어졌다. 또한 늘린 차체로도 포탑의 중량이 지나치게 무거워 구동장비에 많은 부담을 줬고 차체중심이 위로 상승한 덕분에 급선회하면 뒤집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작으로 판명났다. 애초에 이 전차가 목표로 했던 "크롬웰 전차부대를 따라다니며 17파운더 포의 화력으로 지원하는 동계열 전차"로 운용하는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대부분의 크롬웰 전차 배치 부대에도 보다 안정적인 [[셔먼 파이어플라이]]로 교체되어 배치되었다. 챌린저는 신뢰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차 자주포]] 역할을 맡을 전차가 하나라도 많이 필요했던 영국군 기갑부대의 사정 때문에 급하게 양산된 차량이었던 만큼 영국군은 많은 문제점과 악평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주포의 위력만 믿고 이를 악착같이 굴려 먹었다. 챌린저가 배치될 시점부터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있던 만큼 영국 육군은 챌린저를 화력 보충을 위한 임시방편 정도로만 활용할 계획이었고, 1943년 11월에 개발사를 챌린저 생산에서 해방하여 크롬웰 업그레이드에 더 집중하도록 하는게 결정되었다.[* 이후 개발사와 로보텀은 [[코멧 전차]]의 개발 참여에 더 집중했다.]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생산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영국군은 챌린저보다 신뢰성이 더 우수한 파이어플라이를 선호했고, 1945년부터 [[코멧 전차]]의 배치가 시작되면서 챌린저는 영국군 장비에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1945년 중반부터는 일부 물량이 코멧 전차로 대체되면서 폴란드 육군과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에게 공여되었고, 1951년까지 이들이 운용했다.[[https://tanks-encyclopedia.com/ww2/gb/A30_Cruiser-MkVIII_Challenger.php| ]] 그나마 장점을 찾아보면 파이어플라이보다 차체가 낮아서 승무원 탑승이 쉽고, 주포 부각이 4도 크다는 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